뉴욕 주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알 파치노는 미국 배우 대부분?아니 세계 배우 대부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잣대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때로 감독이기도 했으며(「뉴욕 광시곡(1996)」) 할리우드의 두둑한 돈주머니에 큰 덕을 입은 사람임에도 예술적으로 다양한 방향을 추구하는 성향의 배우인 파치노는 그 본질상 철저히 미국적인 사람이다. 그는 이국적인 외모임에도 그런 제한을 뛰어넘어 주류를 재정의하는 데 기여했고 여러 가지 장애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때 미남이었던 얼굴도 피부가 쳐지기 시작하며 젊음의 광채를 잃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심오하고도 위험해보이는 미소의 주름이 새겨졌고 형형한 눈빛의 둥그런 눈은 그가 만화 스타일의 악당(「딕 트레이시(1990)」)이든, 주인공이든(「대부 2(1974)」)이든, 괴물(「데블스 애드버킷(1997)」)이든, 노동계급의 평범한 사람(「프랭키와 자니(1991)」)이든 그가 철저히 표현해내기만 한다면 그 인물들에게 캐리커처 같은 느낌을 더해주었다. 그는 역동적인 연기의 폭을 순식간에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우리가 주로 찬탄하는 것은 그의 연기에서 드러나는 한층 섬세한 세부들, 예컨대 그가 대단히 풍부한 표현력으로써 사용하는 그의 아주 큰 두 손 같은 것들이다.

한마디로 그의 신체적인 특징은 잘생긴 남자들이 흘러넘치는 분야에서 '잘생겼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파치노가 거의 두 세대에 걸쳐 영화계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앵글로색슨계 엘리트 백인들과는 대조적인 그 신선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욱 주목할 점은, 그가 연기한 역할들이 경우에 따라 말과 행동이 무대 또는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지점에 놓이며, 파치노가 자신의 개성을 뚜렷이 새긴 곳도 바로 이 지점이라는 것이다. 리 스트라스버그의 지도를 받으며 메소드 연기를 익힌 그는 자신의 연기 기술을 특정한 수준까지 연마했다.

그리하여 확립된 그의 스타일은, 감정적 상태들을 포착하고 신체적 연기를 통해 그 감정들을 구체화하는 일에 주력을 쏟는 것이며, 동시에 그의 중요한 공동작업자들인 시드니 루멧과 노먼 주이슨,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이클 만 같은 감독들의 영역인 배경과 장식과 조명들을 잘 활용하는 데까지 미친다. 그리하여 파치노는 197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배우 경력 내내 파치노 하면 한두 가지 예외(「광란자(1980)」와 「혁명(1985)」)는 있지만 거의 언제나 수준 높은 작품들을 연상시킨다는 점이 그를 그렇게 존경받는 배우로 만든 것이다.

수십 년에 걸쳐 그는 스스로 하나의 전설로, 다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배우로 자리 잡았으며, 마치 기적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지금은 나이와 함께 거칠어졌지만 원래는 여자처럼 약한 목소리에 체구도 작은 데다 이탈리아계였음을, 더구나 당시는 그런 특징들로는 잘 되어야 조연 배우로 머무는 시절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파치노는 노동계급의 영웅인 동시에 신사들의 모범이기도 한데, 이는 그의 연기력에 대한 증언인 동시에 그의 깊은 숙고에서 나온 장인정신이 발휘된 결과이다.


대부에서 벗어나기

「형사 서피코(1973)」의 주인공 서피코와 「뜨거운 오후(1975)」의 요령 없는 은행 강도 소니, 「도니 브래스코(1997)」의 마피아 부하 레프티 루제로, 아니면 「스카페이스(1983)」의 광기어린 토니 몬타나를 보자. 그 모든 길이 현대 미국 영화의 기반인 「대부(1972)」를 통과한다. 알 파치노는 영원히 마이클 콜레오네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 번의 연기?그야말로 한 생애의 역할인?로 살인과 형제 살해와 실패한 사랑과 힘의 축적을 배경으로, '노력하면 다 된다'는 아메리칸 드림과 가문에 대한 충성의 악몽과 20세기 이민자들의 경험 전체를 구현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인의 향기(1992)」의 프랭크 슬레이드 중령 같은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에도 잘 맞는다. 그 연기로 그는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받았다. 또 「히트(1995)」나 「인사이더(1999)」, 「칼리토(1993)」, 또는 HBO가 텔레비전용으로 각색한 토니 쿠시너의 「엔젤스 인 아메리카(2003)」에서 그에게 에미상을 안겨준 자극적이고 짓궂은 로이 콘 같은 역할들이 더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파치노는 같은 세대 배우들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우뚝 서 있다.


연극에 빠지다

알 파치노는 연극에도 엄청난 기여를 했다. 어린 시절에는 학교 연극으로 따분함을 달랬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너무 가난해서 오디션을 보러 가기 위해 버스 요금을 빌려야 할 정도였다. 영화로 진출했을 때 그가 맡은 초기의 역할들은 그가 무대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까칠하고 현실적인 역할들과 유사한 분위기를 갖는다. 「백색공포(1971)」에서 그가 그려낸 마약중독자도 그렇다. 세월이 지나면서 파치노는 영화에 집중했지만, 연극은 여전히 그의 첫사랑으로 남아 있다.


· 그는 유명한 메소드 연기 코치 리 스트라스버그와 함께 연기를 공부했고 스트라스버그는 나중에 「대부 2」에서 하이먼 로스 역으로 파치노와 함께 출연했다.

· 그는 「인디언은 브롱크스를 원한다」로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처음으로 부각시켰고 그 연극으로 오비상을 받았다. 후에 그는 토니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 그는 보스턴의 데이비드 휠러 극단의 오래된 단원이다.

· 그가 2002년에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에 출연했을 때, 입장료는 오프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높은 액수(115달러)를 기록했다.

·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팬인 그는, 그 대시인을 더 많은 관객에게 알리기 위해 「뉴욕 광시곡」을 감독하고 제작하고 주연까지 해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나는 내가 배우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나는 무비스타가 되고자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출처 : 501 영화배우-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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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홉킨스는 사실상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양들의 침묵(1991)」의 한니발 렉터 역을 연기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자격을 갖춘 스타 배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숨을 빨아들이는 잡음과 꼭 집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사악한 억양이 모방의 대상이 되었고, 이 오랜 경력의 성격 배우는 프레디 크루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그는 1960년대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연기를 해왔는데, 초기의 중요한 작품인 「겨울의 라이온(1968)」에서는 왕자 시절의 사자왕 리처드를 연기했고 BBC 텔레비전의 대작 「전쟁과 평화(1972)」에서는 피에르 베주호프를 연기했다.


홉킨스는 「여덟 개의 종이 울릴 때(1971)」로 액션영웅에 도전해보았지만, 1970년대에는 대체로 연극 무대와 텔레비전에서만 활동하면서 법정물 미니시리즈 「QB Ⅶ(1974)」에서는 원고를, 「린드버그 유괴사건(1976)」에서는 피고를 연기했고 이따금 「재생 인간의 공포(1977)」 같은 기이한 영화에도 출연했다. 「매직(1978)」의 미치광이 복화술사 역과 「엘리펀트 맨(1980)」에서는 헌신적이지만 자기회의에 빠진 의사 역에서 보여준 연기는 대단히 탁월했다.


「굿 파더(1985)」와 「84번가의 연인(1987)」 같은 진지한 영화에서 위축되고 남에게 당하는 인물들을 연기하기도 했지만, 홉킨스는 실제보다 더 대단하게 그려진 역사적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다. 예컨대 「젊은 날의 처칠(1972)」의 로이드 조지, 「엔테베 특공작전(1976)」의 이차크 라빈, 「더 벙커(1981)」의 아돌프 히틀러, 「노트르담의 꼽추(1982)」의 콰지모도, 「바운티호의 반란(1984)」의 블라이 선장, 「블런트(1985)」의 반역자 스파이 가이 버지스, 「닉슨(1995)」의 리처드 닉슨, 「피카소(1996)」의 파블로 피카소, 「아미스타드(1997)」의 존 퀸시 애덤스, 「마스크 오브 조로(1998)」의 조로, 「티투스(1999)」의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역이 모두 그렇다. 이런 대단한 역할들에서 그가 보여준 강점은 씁쓸하게 절제된 연기다.


그가 과장된 연기의 유혹에 굴복한 것은 「드라큘라(1992)」에서 반 헬싱 역을 맡았을 때뿐이다. 속편 「한니발(2001)」과 「레드 드래곤(2002)」에서 다시 연기한 렉터 박사 이후로 홉킨스는 늘 출연 요청이 쇄도하는 배우이며, 주로 영국인들의 억압된 내면의 열정을 표현하는 역할들(「하워즈 엔드」, 「셰도우랜드」와 「남아 있는 나날」)을 맡았다. 빼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1993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한니발 되기


「양들의 침묵」에서 보이는 한니발 렉터의 매너리즘들 중에는 홉킨스 자신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많다. 조디 포스터의 웨스트버지니아 억양을 흉내 내며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장면, 길게 꼬아 발음한 '키앤티'라는 단어와 흉측하게 후루룩거리는 소리까지. 홉킨스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시간이 15분밖에 안 되는데도 그 잊을 수 없는 연기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여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연기의 가장 짧은 출연 시간으로 기록된다. 홉킨스는 그 연쇄살인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함께 점심을 먹으면 아주 재미있을 사람 같다. 내가 그의 점심거리만 아니라면."


출처 : 501 영화배우-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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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드웨인 더글러스 존슨

일명 : 더 록, The Rock

신체 196cm, 118kg

본명은 드웨인 존슨. 키 198cm에 125kg의 거구이다. 그의 집안은 3대에 걸쳐 레슬링 선수를 배출해낸 집안으로서 그는 자연스럽게 레슬링을 접할 수 있었다. 원래 미식축구 선수였던 그는 1995년 레슬링계에 입문하여 1년 후 WWF에 데뷰하였다.그 후 지금까지 WWF에서만 6번의 WWF 챔피언, 2번의 WCW 챔피언과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5번의 테그팀 챔피언과 2000년 로얄럼블 우승 등을 기록하며 스톤콜드, 언더테이커 등과 함꼐 WWF의 메인 이벤터로 자리매김 하였다. (cjsyt@hitel.net) 더 락은 21세기 액션 영웅의 자리를 놓고 빈 디젤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현재는 더 락이 우위를 선점한 상황. <트리플 X>의 후속작으로 <디아블로> <리딕>을 선택한 빈 디젤은 연달아 실패를 맛봤다. 반면 더 락은 코믹 액션 <웰컴 투 더 정글>로 전미 박스 오피스 정상을 차지한 다음 스펙터클 액션 <워킹 톨>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성공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워킹 톨>에서 더 락은 상처 입고, 분노하다가 감정을 다스리는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수적인 분장 없이도 헐크나 슈퍼맨의 위풍당당함을 선보이는 그의 자연스러운 파워는 뜨겁고도 쿨하다. 더 락은 스스로 스턴트를 하고, 펀치를 날리고, 슬램을 한다. 그는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액션과 동시에 유머를 제공한다. 더 락은 1972년 프로 레슬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그는 경기 중 입은 부상으로 프로 선수의 꿈을 버려야 했다.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프로 레슬링. 1994년 프로 레슬링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된 그는 24세의 나이로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6차례 더 챔피언 자리에 오르면서 최고 스타로 군림했다. 2001년 <미이라 2>에 '스콜피온 킹' 역으로 출연하면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잇는 근육질 스타의 자질을 인정 받았다. 이 영화를 통해 더 락은 자신의 존재를 전세계적으로 알렸다. <미이라> 시리즈를 제작했던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감독 스티븐 소머즈와 함께 '스콜피온 킹'을 소재로 영화화하기로 결정짓고 <스콜피온 킹>에 더 락을 캐스팅 했고, 이 영화는 개봉 첫 주말 3,608만 달러를 거둬들이며 당시까지 역대 4월 개봉작 가운데 최고 수익을 올린 영화가 되었다. 작년에는 역시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코믹 액션 어드벤처 <웰컴 투 더 정글>에서 슈워제너거와 스탤론의 전통을 잇는 근육질 스타의 면모 뿐 아니라 스크린에서의 존재감을 보여준 바 있다. <워킹 톨>에서는 품위와 지성이 결합된 액션 아이돌 같은 강건한 육체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인생에서 자신이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온다. 크리스 본의 경우엔 한 사람이 주위를 변화 시키는 것을 볼 수 가 있다. 그는 자신만의 작은 의지로 남들 앞에 선 것이다. 정말 대단한 이야기이며, 열정이 담긴 영화다.” 더 락은 말한다.


프로필 소개 출처 : https://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5558



작품 프로필 출처: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31493#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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