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윤하면 지붕뚫고 하이킥, 김탁구 말고는 떠오르는게 없었는데

친애하는 판사님께, 드라마는 흥행판도가 어떻게 흘러갈진 모르겠지만

윤시윤 연기력하나만큼은 제대로 각인시킨 것 같다.

난 윤시윤이 이렇게 능글맞고 껄렁껄렁한 캐릭터가 어울릴거라고 생각못했는데.

윤시윤 다채로운 표정 구경만해도 시간 잘감. 

이렇게 연기력 키워서 기분좋은 충격주는 배우들 너무 좋다.

이런 배우들은 차기작 무조건 기대되고, 믿고 보는 배우 되는 경향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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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이동민 (李東敏)

출생 1997년 3월 30일 (21세),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신체 183cm, 67kg, B형

가족 부모님, 남동생(1999년생)

소속그룹 ASTRO

소속사 판타지오, 판타지오 뮤직

학력 군포 능내초등학교(졸업)

수리중학교 (졸업)

수리고등학교 (전학)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연예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휴학)


+ 강동원 이후로 순수하게 얼굴만으로 경탄하게 되는 남자연예인.

강남미인 전에도 잘생긴 줄은 알았지만, 선이 너무 곱고 가늘어서

여성스러운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왠걸.

강남미인에서 냉미남 매력 터진다. 차은우 얼굴보면 시간 잘감.

간만에 남자, 여자 이견없는 비주얼인듯. 눈이 너무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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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주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알 파치노는 미국 배우 대부분?아니 세계 배우 대부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잣대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때로 감독이기도 했으며(「뉴욕 광시곡(1996)」) 할리우드의 두둑한 돈주머니에 큰 덕을 입은 사람임에도 예술적으로 다양한 방향을 추구하는 성향의 배우인 파치노는 그 본질상 철저히 미국적인 사람이다. 그는 이국적인 외모임에도 그런 제한을 뛰어넘어 주류를 재정의하는 데 기여했고 여러 가지 장애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때 미남이었던 얼굴도 피부가 쳐지기 시작하며 젊음의 광채를 잃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심오하고도 위험해보이는 미소의 주름이 새겨졌고 형형한 눈빛의 둥그런 눈은 그가 만화 스타일의 악당(「딕 트레이시(1990)」)이든, 주인공이든(「대부 2(1974)」)이든, 괴물(「데블스 애드버킷(1997)」)이든, 노동계급의 평범한 사람(「프랭키와 자니(1991)」)이든 그가 철저히 표현해내기만 한다면 그 인물들에게 캐리커처 같은 느낌을 더해주었다. 그는 역동적인 연기의 폭을 순식간에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우리가 주로 찬탄하는 것은 그의 연기에서 드러나는 한층 섬세한 세부들, 예컨대 그가 대단히 풍부한 표현력으로써 사용하는 그의 아주 큰 두 손 같은 것들이다.

한마디로 그의 신체적인 특징은 잘생긴 남자들이 흘러넘치는 분야에서 '잘생겼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파치노가 거의 두 세대에 걸쳐 영화계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앵글로색슨계 엘리트 백인들과는 대조적인 그 신선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욱 주목할 점은, 그가 연기한 역할들이 경우에 따라 말과 행동이 무대 또는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지점에 놓이며, 파치노가 자신의 개성을 뚜렷이 새긴 곳도 바로 이 지점이라는 것이다. 리 스트라스버그의 지도를 받으며 메소드 연기를 익힌 그는 자신의 연기 기술을 특정한 수준까지 연마했다.

그리하여 확립된 그의 스타일은, 감정적 상태들을 포착하고 신체적 연기를 통해 그 감정들을 구체화하는 일에 주력을 쏟는 것이며, 동시에 그의 중요한 공동작업자들인 시드니 루멧과 노먼 주이슨,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이클 만 같은 감독들의 영역인 배경과 장식과 조명들을 잘 활용하는 데까지 미친다. 그리하여 파치노는 197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배우 경력 내내 파치노 하면 한두 가지 예외(「광란자(1980)」와 「혁명(1985)」)는 있지만 거의 언제나 수준 높은 작품들을 연상시킨다는 점이 그를 그렇게 존경받는 배우로 만든 것이다.

수십 년에 걸쳐 그는 스스로 하나의 전설로, 다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배우로 자리 잡았으며, 마치 기적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지금은 나이와 함께 거칠어졌지만 원래는 여자처럼 약한 목소리에 체구도 작은 데다 이탈리아계였음을, 더구나 당시는 그런 특징들로는 잘 되어야 조연 배우로 머무는 시절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파치노는 노동계급의 영웅인 동시에 신사들의 모범이기도 한데, 이는 그의 연기력에 대한 증언인 동시에 그의 깊은 숙고에서 나온 장인정신이 발휘된 결과이다.


대부에서 벗어나기

「형사 서피코(1973)」의 주인공 서피코와 「뜨거운 오후(1975)」의 요령 없는 은행 강도 소니, 「도니 브래스코(1997)」의 마피아 부하 레프티 루제로, 아니면 「스카페이스(1983)」의 광기어린 토니 몬타나를 보자. 그 모든 길이 현대 미국 영화의 기반인 「대부(1972)」를 통과한다. 알 파치노는 영원히 마이클 콜레오네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 번의 연기?그야말로 한 생애의 역할인?로 살인과 형제 살해와 실패한 사랑과 힘의 축적을 배경으로, '노력하면 다 된다'는 아메리칸 드림과 가문에 대한 충성의 악몽과 20세기 이민자들의 경험 전체를 구현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인의 향기(1992)」의 프랭크 슬레이드 중령 같은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에도 잘 맞는다. 그 연기로 그는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받았다. 또 「히트(1995)」나 「인사이더(1999)」, 「칼리토(1993)」, 또는 HBO가 텔레비전용으로 각색한 토니 쿠시너의 「엔젤스 인 아메리카(2003)」에서 그에게 에미상을 안겨준 자극적이고 짓궂은 로이 콘 같은 역할들이 더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파치노는 같은 세대 배우들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우뚝 서 있다.


연극에 빠지다

알 파치노는 연극에도 엄청난 기여를 했다. 어린 시절에는 학교 연극으로 따분함을 달랬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너무 가난해서 오디션을 보러 가기 위해 버스 요금을 빌려야 할 정도였다. 영화로 진출했을 때 그가 맡은 초기의 역할들은 그가 무대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까칠하고 현실적인 역할들과 유사한 분위기를 갖는다. 「백색공포(1971)」에서 그가 그려낸 마약중독자도 그렇다. 세월이 지나면서 파치노는 영화에 집중했지만, 연극은 여전히 그의 첫사랑으로 남아 있다.


· 그는 유명한 메소드 연기 코치 리 스트라스버그와 함께 연기를 공부했고 스트라스버그는 나중에 「대부 2」에서 하이먼 로스 역으로 파치노와 함께 출연했다.

· 그는 「인디언은 브롱크스를 원한다」로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처음으로 부각시켰고 그 연극으로 오비상을 받았다. 후에 그는 토니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 그는 보스턴의 데이비드 휠러 극단의 오래된 단원이다.

· 그가 2002년에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에 출연했을 때, 입장료는 오프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높은 액수(115달러)를 기록했다.

·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팬인 그는, 그 대시인을 더 많은 관객에게 알리기 위해 「뉴욕 광시곡」을 감독하고 제작하고 주연까지 해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나는 내가 배우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나는 무비스타가 되고자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출처 : 501 영화배우-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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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홉킨스는 사실상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양들의 침묵(1991)」의 한니발 렉터 역을 연기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자격을 갖춘 스타 배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숨을 빨아들이는 잡음과 꼭 집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사악한 억양이 모방의 대상이 되었고, 이 오랜 경력의 성격 배우는 프레디 크루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그는 1960년대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연기를 해왔는데, 초기의 중요한 작품인 「겨울의 라이온(1968)」에서는 왕자 시절의 사자왕 리처드를 연기했고 BBC 텔레비전의 대작 「전쟁과 평화(1972)」에서는 피에르 베주호프를 연기했다.


홉킨스는 「여덟 개의 종이 울릴 때(1971)」로 액션영웅에 도전해보았지만, 1970년대에는 대체로 연극 무대와 텔레비전에서만 활동하면서 법정물 미니시리즈 「QB Ⅶ(1974)」에서는 원고를, 「린드버그 유괴사건(1976)」에서는 피고를 연기했고 이따금 「재생 인간의 공포(1977)」 같은 기이한 영화에도 출연했다. 「매직(1978)」의 미치광이 복화술사 역과 「엘리펀트 맨(1980)」에서는 헌신적이지만 자기회의에 빠진 의사 역에서 보여준 연기는 대단히 탁월했다.


「굿 파더(1985)」와 「84번가의 연인(1987)」 같은 진지한 영화에서 위축되고 남에게 당하는 인물들을 연기하기도 했지만, 홉킨스는 실제보다 더 대단하게 그려진 역사적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다. 예컨대 「젊은 날의 처칠(1972)」의 로이드 조지, 「엔테베 특공작전(1976)」의 이차크 라빈, 「더 벙커(1981)」의 아돌프 히틀러, 「노트르담의 꼽추(1982)」의 콰지모도, 「바운티호의 반란(1984)」의 블라이 선장, 「블런트(1985)」의 반역자 스파이 가이 버지스, 「닉슨(1995)」의 리처드 닉슨, 「피카소(1996)」의 파블로 피카소, 「아미스타드(1997)」의 존 퀸시 애덤스, 「마스크 오브 조로(1998)」의 조로, 「티투스(1999)」의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역이 모두 그렇다. 이런 대단한 역할들에서 그가 보여준 강점은 씁쓸하게 절제된 연기다.


그가 과장된 연기의 유혹에 굴복한 것은 「드라큘라(1992)」에서 반 헬싱 역을 맡았을 때뿐이다. 속편 「한니발(2001)」과 「레드 드래곤(2002)」에서 다시 연기한 렉터 박사 이후로 홉킨스는 늘 출연 요청이 쇄도하는 배우이며, 주로 영국인들의 억압된 내면의 열정을 표현하는 역할들(「하워즈 엔드」, 「셰도우랜드」와 「남아 있는 나날」)을 맡았다. 빼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1993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한니발 되기


「양들의 침묵」에서 보이는 한니발 렉터의 매너리즘들 중에는 홉킨스 자신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많다. 조디 포스터의 웨스트버지니아 억양을 흉내 내며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장면, 길게 꼬아 발음한 '키앤티'라는 단어와 흉측하게 후루룩거리는 소리까지. 홉킨스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시간이 15분밖에 안 되는데도 그 잊을 수 없는 연기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여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연기의 가장 짧은 출연 시간으로 기록된다. 홉킨스는 그 연쇄살인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함께 점심을 먹으면 아주 재미있을 사람 같다. 내가 그의 점심거리만 아니라면."


출처 : 501 영화배우-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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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내역

2017.8 제36회 황금촬영상 최우수여우주연상

2016.12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로맨틱코미디부문

2016.12 제5회 스타의밤 대한민국톱스타상 톱스타상

2015.12 K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2014.12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미니시리즈부문

2014.12 S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2013.11 제34회 청룡영화상 청정원 인기스타상

2013.10 제6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10대 스타일 아이콘상

2012.12 제33회 청룡영화상 청정원인기스타상

2012.4 제4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2011.12 MBC 드라마대상 인기상

2011.12 MBC 드라마대상 미니시리즈부문 여자 최우수상

2011.12 MBC 드라마대상 베스트 커플상

2011.7 Mnet 20's Choice 핫 스타일 아이콘상

2011.7 Mnet 20's Choice 핫 드라마 스타상

2010.12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

2010.12 MBC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2010.11 제3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스타일 리더상

2010.6 중국 CETV 아시아 10대배우 시상식 10대 스타상

2009.6 제8회 뉴욕아시안영화제 떠오르는 스타 아시아상

2009.1 제1회 KMDB 초이스 어워드 여우주연상

2008.12 여성영화인축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2008.12 제11회 디렉터스 컷 어워드 올해의 연기자상

2008.12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

2008.11 제9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영화배우부문 포토제닉상

2007.12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

2007.12 제10회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2007.12 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조연상

2006.11 제47회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2003.12 K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2003.12 KBS 연기대상 네티즌상

2003.12 KBS 연기대상 여자우수연기상

2002.12 MBC 연기대상 인기상

2002.3 제38회 백상예술대상 TV 여자신인연기상

2001.12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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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내역

2017.12 MBC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여자 최우수상

2016.3 제8회 스타일 아이콘 아시아 10대 스타일 아이콘

2013.12 MBC 연기대상 대상

2013.12 MBC 연기대상 여자 인기상

2013.12 MBC 연기대상 올해의 연기자상

2012.9 뉴질랜드 대사관 감사패

2012.7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듀서스 초이스 부문

2011 그리메상 시상식 최우수연기자상

2011.10 제48회 저축의 날 기념식 국무총리 표창

2011.10 메디컬 코리아 해외환자 대상 나눔의 달 감사패

2010 SBS 연기대상 드라마스페셜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2010 SBS 연기대상 네티즌 최고인기상

2010 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2010 S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2010 제4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2009.12 제30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인기스타상

2009.8 제3회 Mnet 20's Choice 핫무비스타 여자부문상

2009.12 제5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

2008 2007 아시아 모델상 인기스타상

2008 보건복지가족부 국무총리표창

2007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올해의방송인 탤런트부문

2007 단국대학교 공로상

2007 제32회 골든체스트상 여우주연상

2006 KBS 연기대상 베스트커플상

2006 KBS 연기대상 대상

2006 KBS 연기대상 네티즌상

2005 제26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2004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

2004 제4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2003 제39회 백상예술대상 갤러리아 인기상

2003 MBC 연기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2001 제3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신인연기상

2000 MBC 연기대상 TV부문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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